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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최치원(崔致遠), 최치원이여! 中


상림(上林)을 감싸고 흐르는 위천이 이젠 겨울을 녹이고, 버들강아지 노래를 따라 따뜻한 아지랑이와 함께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논개묘역 입구. 붉은 주단을 깔아 놓은 듯하다.

강 따라 조성(造成)산책(散策)길을 따라 걸어본다.
그날 천령군(天嶺郡) 태수(太守) 최치원(崔致遠)도 지금 탐방자(探訪者)가 걷고 있는 이 길을 걸으며, 혼돈(混沌) 속에서 몸부림치는 천년(千年) 왕국(王國) 신라(新羅)의 해짐을 미리 알고 눈시울을 붉혔으리라. 조선(朝鮮) 반상사회(班常社會)보다도 더한 골품제(骨品制)엄존(儼存)하는 조국(祖國)에 대한 회한(悔恨)이 온 몸을 뒤덮었을 것이다.
그가 남긴 ‘난랑비서(鸞郞碑序)’를 보면, www.pjnonsul.com
   “우리나라에 현묘(玄妙)()가 있으니 (이를) 풍류(風流)라 이른다.
()기원(起源)선사(仙史)-화랑(花郞)들의 역사(歷史), 김대문(金大問)의『화랑세기(花郞世紀)』를 두고 한 말로 보인다.-에 자세히 실려 있거니와, 실로 이는 삼교(三敎)-佛 ․ 仙 ․ 孔-를 포함(包含)하고 중생(衆生)교화(敎化)한다.
<중략(中略)>”라고 치원(致遠)은 적고 있다.
이는 치원(致遠) 역시 ‘난랑(鸞郞)’이라는 화랑(花郞) 출신(出身)비문(碑文)을 지을 때, 화랑(花郞)역사(歷史)정확(正確)히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혹 그도 화랑(花郞)이용(利用)하여 서라벌(徐羅伐) 영화(榮華)를 꿈꾸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논개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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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림(上林)을 나와 함양 나들목에서 대전 통영 고속도로(高速道路)를 타고 가다, 서상 나들목으로 빠져 나왔다.
이어 서상면사무소에서 곧장 서상면 금당리 논개(論介) 묘역(墓域)으로 ()했다.
위천은 봄빛이었는데 이곳은 잔설(殘雪)이 나그네를 붙잡는다.
좁은 도로(道路)를 잠깐 달리면 언덕위에 높다랗게 누런 잔디의 봉분(封墳)이 두 개 나타난다.
위쪽이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當時) 진주성(晋州城) 전투(戰鬪)에서 장렬(壯烈)산화(散華)충의공(忠懿公) 경상우도(慶尙右道)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최경회(崔慶會 : 1532~1593)의 ()이고, 바로 아래쪽이 진주(晋州) 촉석루(矗石樓) 의암(義巖)에서 왜장(倭將)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껴안고, 남강(南江)투신(投身)신안(新安) 주씨(朱氏) 논개(論介)()다.


진주시와 전북 장수면이 공동 현상공모한 논개 표준영정 최우수작, 충남대 윤여환교수의 작품[국제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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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은 주차장(駐車場)적막(寂寞)만이 나뒹굴며, 죽어서도 남편(男便) 곁에 묻힌 다시 태어난 서라벌(徐羅伐) 원화(源花), 절개(節槪)상징(象徵) 논개(論介)의 넋을 위로(慰勞)하고 있다.
그동안 논개(論介)기생(妓生)으로 폄하(貶下)되어, 친정(親庭)신안(新安) 주씨(朱氏) 집안과 남편(男便)의 집안인 해주(海州)최씨(崔氏) 문중(門中)에서도 외면(外面)하여, 약 400년 동안 철저히 무시(無視)를 당하여 왔다.
그러다가 1975년 해주(海州)최씨(崔氏) 족보(族譜)에 ‘의암부인(義巖夫人) 신안주씨(新安朱氏)’로 오르면서 ()을 조금이나마 풀었고, 1987년 () 문중(門中)에서 최경회(崔慶會)장군(將軍)논개(論介)()를 찾아 대대적(大大的)으로 성역화(聖域化) 하여, 구천(九天)을 헤매던 의암(義巖) 논개(論介)()은 이제 극락(極樂)에서 영면(永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다행(多幸)이 아닐 수 없다.
절개(節槪)의 고장 함양사람들의 역사(歷史) 되찾기를 바라보면서,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역사(歷史)를 대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아직은 한숨이 먼저라고 말하고 싶다.


의암 논개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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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개(論介)는 매우 특이하게 4갑술(甲戌年, 甲戌月, 甲戌日, 甲戌時 - 1574년 9월 3일 밤)의 사주(四柱)를 타고 태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 주달문(朱達文)술시(戌時)에 딸을 낳았으니까, ()를 낳은 것과 같다고 하여 ‘놓은 개’, 즉 ‘논개’라 이름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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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개(論介)는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숙부(叔父)에게 의탁(依託)되는데, 숙부(叔父) 주달무(朱達武)김풍헌(金風憲)에게 논개(論介)를 민며느리로 팔아버리고 달아나 버렸다.
하는 수 없이 논개(論介) 모녀(母女)외가(外家)피신(避身)하게 되나, 곧 김풍헌(金風憲)제소(提訴)로 장수 관아(官衙)에 붙잡히는 신세(身世)가 되고 말았다.
여기서 만난 사람이 재판관(裁判官)현감(縣監) 최경회(崔慶會)였다.
경회(慶會)논개(論介) 모녀(母女)무죄방면(無罪放免)하나 갈 곳이 없던 두 사람은 관아(官衙)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연명(延命)하게 되었다.
이후 논개(論介)의 나이 17세(1590년) 되는 해 그동안 자신(自身)과 어머니를 보살펴 준 담양부사(潭陽府使) 최경회(崔慶會)에게 부실(副室)로 들어앉게 되었다고 한다.


의암 논개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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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新羅)에는 원화(源花)가 있었다.
비록 준정(俊貞)남모(南毛)를 죽이는 사건(事件)발생(發生)하자, 원화(源花)폐지(廢止)하고 화랑(花郞)으로 대신(代身)하게 하였지만, 서라벌(徐羅伐) 여인네의 마음가짐만은 언제나 한결 같았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논개(論介)천년신라(千年新羅) 여인네들의 傳統인 곧고 아름다운 심성(心性)을 가지고, 시대(時代)를 달리하여 태어난 것이 아닌가 한다.
추호(秋毫)의 망설임도 없이 지아비 및 나라의 원수(怨讐)자신(自身)만의 방법(方法)으로 갚으려고 한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는 판단(判斷)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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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 : 1879~1944)은 그의 () <논개(論介)애인(愛人)이 되어 그의 ()에>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www.pjnons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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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과 밤으로 흐르고 흐르는 남강은 가지 않습니다. www.pjnonsul.com
   바람과 비에 우두커니 섰는 촉석루는 살 같은 광음을 따라서 달음질칩니다. www.pjnonsul.com
   논개(論介)여, 나에게 울음과 웃음을 동시에 주는 사랑하는 논개여. www.pjnonsul.com
   그대는 조선의 무덤 가운데 피었던 좋은 꽃의 하나이다.
그래서 그 향기는 썩지 않는다.
나는 시인으로 그대의 애인이 되었노라.<중략(中略)> www.pjnonsul.com
  


논개 묘소. 뒤편에 있는 묘소가 그의 남편 최경회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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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논개(論介)서라벌(徐羅伐) 순수(純粹)를 담고 있는 또 하나의 의미(意味)일 것이다.
이곳 함양은 최치원(崔致遠)뿐만 아니라, 아직도 수많은 화랑(花郞) 원화(源花)가 다시 태어나는 곳이라는 반가운 느낌이 한줄기 시원한 바람으로 발길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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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한자
1.造成  2.散策  3.混沌  4.王國  5.新羅  6.祖國  7.悔恨  8.玄妙  9.風流  10.起源  11.花郞  12.包含  13.衆生  14.敎化  15.中略  16.碑文  17.榮華  18.道路  19.封墳  20.壬辰倭亂  21.戰鬪  22.壯烈  23.投身  24.寂寞  25.男便  26.象徵  27.慰勞  28.妓生  29.親庭  30.門中  31.外面  32.無視  33.族譜  34.將軍  35.九天  36.極樂  37.多幸  38.四柱  39.戌時  40.叔父  41.依託  42.外家  43.避身  44.提訴  45.官衙  46.身世  47.延命  48.自身  49.事件  50.發生  51.廢止  52.代身  53.心性  54.秋毫  55.怨讐  56.方法  57.判斷  58.愛人  59.純粹  60.意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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